'최후의 인류' PD "1991년엔 실패, 지구 소중함 느낄 실험에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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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과학 리얼리티, 넷플릭스 대한민국 톱10 들며 흥행
예능과 다큐 결합해 호응…"유승호·비비 등 활약에 놀랐죠"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미국 애리조나의 한 사막. 연예인과 과학자 등 직업과 성별, 성격 등이 모두 제각각인 7명이 지구 생태계를 본뜬 거대한 밀폐 시스템에서 생존하기 위해 다 함께 물을 만들고 식량을 확보한다.
서바이벌 예능 같기도, 과학 다큐멘터리 같기도 한 EBS '최후의 인류'는 지난 4일 첫 방송 이후 넷플릭스 '오늘 대한민국의 톱10 시리즈' 4위를 기록하며 깜짝 흥행 몰이를 했다.
'최후의 인류'를 기획한 이미솔 PD는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제작진 인터뷰에서 "넷플릭스에 미스터리나 생존, 추리물을 좋아하는 시청층이 많다고 들었는데, 예상보다 좋은 성적에 힘이 난다"며 "조금 더 순위를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고 웃음 지었다.
총 8부작인 '최후의 인류'는 기후 위기로 인류 절반이 멸망한 2038년을 배경으로, 7인의 대원이 애리조나 사막의 거대 밀폐 기지 '바이오스피어2'에서 살아남는 과정을 그린 과학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배우 유승호와 가수 비비, 코미디언 이은지 등 연예인들을 비롯해 의사 겸 드라마 작가 이낙준, 뇌과학자 장동선, 화학자 장홍제, 지구과학자 김한결 등 다양한 분야의 과학자들이 출연했다.
이들이 찾은 실험기지 '바이오스피어2'는 1991년 당시 우주의 다른 행성에서도 지구를 모사한 공간을 꾸며놓으면 인간이 살 수 있을지 확인하기 위해 8명의 대원이 2년간 생존 실험을 벌인 현장이다. 하지만 이 실험은 물, 식량, 공기 등 예측 못 한 변수들이 연이어 터지며 실패로 끝났다.
이 PD는 "이 프로그램은 10여년 전, 제가 PD가 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아이템이었다"며 "'인간 실험: 바이오스피어2-2년 20분'이란 책을 통해 그 공간에서 실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게 됐는데, 다큐멘터리로 꼭 한번 다뤄보고 싶었다"고 떠올렸다.
"이 실험이 실패로 끝났다는 게 저에겐 더 재미있는 지점이었어요. 지구가 얼마나 정교한 시스템으로 돌아가는지, 지구의 소중함을 알려준 중대한 실험이라고 생각했죠. 수십 년이 지난 뒤 다시 한번 이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 출연자들도 분명 1991년의 대원들이 느꼈던 것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이미솔 PD)
제작진은 7명의 대원을 조합하는 과정에도 고심을 거듭했다.
이 PD는 "처음엔 과학자들로만 구성하려 했지만, 대중의 눈높이에서 소통할 역할이 없어서 프로그램이 어려워질 것 같았다"며 "다양성을 높이면서도 환경, 과학 등의 키워드에 진심인 분들을 섭외하려 했다"고 말했다.
제작진에 따르면 유승호는 사전 미팅 때 8년 동안 쓴 텀블러를 가져올 정도로 환경보호에 진심이었고, 비비는 프로그램 자문을 얻는 과정에서 서울대 교수의 추천을 받아 섭외했다. 또 이은지는 환경 관련 홍보대사를 한 경력이 있었다.
이 PD는 "비비 씨는 행동력이 있어 현장에서 뛰어난 관찰력과 추리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보여줬고, 이은지 씨는 후반부로 갈수록 어려운 과학 용어를 자기만의 언어로 완벽히 설명하는 모습이 정말 경이로웠다"며 "또 유승호 씨는 요리를 굉장히 잘하는데, 후반부부터 리더의 면모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학자들에게서는 예상외의 예능감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 PD는 "장동선 박사님은 1화에서 직접 맞춘 정장을 입고 오셨고, 장홍제 박사님은 길리슈트를 입고 오셨는데 절대 저희가 요청한 게 아니다"라며 "5∼6화에선 장 박사님이 코미디언보다 웃겨서 '예능신'이 내렸다는 이야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은 '기후 위기'와 '과학'이라는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를 서바이벌 예능의 형태로 가볍게 풀어냈다.
이 PD는 "다큐멘터리와 예능 사이에서 줄타기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며 "초반에는 시청자의 몰입을 위해 예능의 재미를 앞세웠지만, 다큐에 강점을 둔 EBS답게 과학 다큐로 보이길 바라며 만들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제작진 구성도 다양화했다. 과학 다큐를 주로 만들어 온 이 PD를 중심으로 환경 다큐 전문 최평순 PD와 게임 전문 박진우 PD 등이 머리를 맞댔다.
박 PD는 "프로그램 내 게임과 미션은 실제 바이오스피어2 연구원들이 과거에 진행했거나 현재 연구 중인 기록을 바탕으로 설계했다"며 "열대우림 구역의 벌레 발생이나 기압 제어 미션 등도 모두 실제 논문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작진은 25일 방송되는 4화 '식량 편'을 기점으로 프로그램의 결이 예능에서 다큐로 확실히 바뀔 것이라 예고했다.
최 PD는 "4화는 '가장 완벽한 한 끼'라는 주제로 밀폐 공간에서의 식량 자급자족을 다뤘다. 또 후반부에는 바다, 토양, 자원 순환 등 다양한 주제가 나온다"며 "앞부분은 예능 스타일로 풀었지만 뒷 부분에선 교양 다큐로서의 재미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제작진은 시즌2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놨다. 이 PD는 "사실 제작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시즌2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데 넷플릭스에서 먼저 물어봤다"며 "넷플릭스 자본이 들어온다면 시즌2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남극 등 과학과 생존을 엮을 수 있는 공간은 많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