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축구협회와 양궁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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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家 두 체육단체의 상반된 행보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대한축구협회와 대한양궁협회는 대한체육회 산하 단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위상과 규모는 천지 차이다. 축구협회는 국내 최대 규모의 종목별 단체이자 소요 예산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룡이다. 축구협회 연간 예산은 비인기 종목을 관리하는 양궁협회 예산의 10배가 넘는다. 축구가 국민 스포츠로 불릴 만큼 국내에서 가장 인기 있는 덕분이다.
흥미로운 건 이처럼 위상 격차가 큰 축구협회와 양궁협회가 언제부턴가 체육단체의 나쁜 예와 좋은 예의 상징처럼 비교돼왔다는 점이다. 북중미 월드컵 탈락으로 축구협회 행정이 또 도마 위에 올랐지만, 이젠 새롭지도 않다. 이 단체가 문제가 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한민국 사회의 좋지 않은 모든 단면을 응축한 사례로 지목될 정도다. 개혁 대상의 정점으로 지목된 선거관리위원회와도 유사해 보인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반성하고 개선하려는 의지가 약해 보인다는 점에서다.
축구협회에서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문제들은 한둘이 아니다. 이번에도 대표팀 감독 밀실·특혜 선임 논란이 재연됐다. 협회장의 독단적 운영과 시스템 사유화, 공적자금 유용, 불투명한 보조금 지출 등을 둘러싼 의혹도 어김없이 불거졌다. 언론에서 나오는 이런 문제점들은 사실 과거 기사들을 다시 가져와 등장인물과 날짜만 바꿔 써도 될 만큼 해묵은 것들이다. 정부는 축구협회를 특별감사하기로 했고, 국회 청문회까지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이런 해악의 근본 원인으로 축구협회의 고질병인 '카르텔' 문화가 지적된다. 학연을 중심으로 한 인맥 카르텔이 투명한 절차와 운영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 게 언제부터인지도 모를 만큼 오래됐다. '4강 기적'을 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대표적 성공 요인으로 외국인 감독의 철저한 인맥 카르텔 배제와 실력 위주 선수 기용이 꼽혔던 교훈을 축구협회는 까맣게 잊고 말았다. 오래 굳은 나쁜 관습을 바꾸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인데, 한국 축구는 그걸 해낸 바 있다. 하지만 불과 20여년 만에 그 어려운 성취를 다시 원점으로 퇴보시킨 축구협회의 관성이 경이로울 뿐이다.
양궁협회의 행보는 그 반대 측면에서 놀라움의 연속이다. 4년에 한 번 올림픽 때나 관심받는 비인기 종목인데도, 언제나 사람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는 고난 극복기 또는 훈훈한 미담으로 가득하다. 감독·선수 선발 등에서 기준이 바뀌고 절차가 무시된 축구협회와 다르게 양궁협회는 선발 일정과 기준을 일찌감치 미리 공개하고 절대 바꾸지 않는다. 국가대표 선발전이 세계선수권보다 더 어렵다는 한국 양궁 종목에서 이처럼 공정한 룰은 선수 간 아름다운 경쟁과 승복 문화를 정착시켰다.
축구협회 사유화 논란과 달리 양궁협회 회장사인 현대차그룹은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킨다. 재정과 최첨단 기술을 전폭 지원하지만, 선수단 선발 및 경기 운영 같은 기술적 측면엔 전혀 간섭하지 않고 현장 양궁인들에게 전권을 준다. 정의선 협회장이 지위를 이용해 협회를 기업의 사조직처럼 쓴다는 말은 한 번도 나온 적 없다. 오히려 현대차의 첨단 연구·개발 인프라를 양궁 장비 개발과 훈련법 개선에 활용해 성과를 거뒀다는 소식이 들린다.
특히 학연 등을 중심으로 구축되는 파벌 문제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두 협회의 차이를 만들었다. 세상에 파벌 없는 조직은 없다지만, 양궁협회는 오로지 실력만으로 평가받는 시스템을 구축해 인맥 카르텔이 끼어들 틈을 완전히 차단했다. 세계적 스타라는 이름값조차 아무 의미 없다. 세계 랭킹 1위라도, 직전 대회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도 예선 면제 같은 특혜는 언감생심이다. 여러 차례에 걸쳐 수천 발을 쏘는 지옥의 선발전을 똑같이 치러야 한다. 심사위원의 '정성 평가' 따위도 없다. 오직 화살이 과녁의 어디에 꽂혔느냐가 유일한 기준이다.
공교롭게도 축구협회와 양궁협회 조직의 장은 모두 현대가(家)라는 뿌리를 공유한다. IPARK현대산업개발 회장인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현대차그룹 회장인 정의선 양궁협회장은 친척 간이다. 그런데 왜 두 사람의 협회 운영 방식엔 큰 차이가 났을까. 이를 두고 수출 중심 글로벌 제조 기업과 내수 중심 개발 기업의 경영문화 차이 탓일 거란 분석도 나온다. 두 협회의 엇갈린 행보를 보며 조직이 지향할 바를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기업이든, 국가이든 공동체의 지속과 생존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구성원들이 모두 공감하는 공정하고 투명한 기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