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봄날 견뎌낸 삼성 양창섭, 부산 밤하늘에 새긴 '인생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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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KBO리그 역대 143번째 무사사구 완봉승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9회말 전광판에 세 번째 아웃카운트 불이 들어오자 부산 사직야구장 마운드를 홀로 지키던 투수는 마침내 참았던 미소를 보였다.
오랜 시간 그를 짓눌렀던 기대감과 그보다 더 길었던 좌절의 시간을 완벽한 투구로 날려버린 순간이었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오른팔 투수 양창섭이 생애 최고의 하루를 보내며 사직 마운드에 감동의 드라마를 썼다.
양창섭은 24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와 방문 경기에 선발로 등판, 9이닝 동안 단 1개의 안타만을 허용하며 사사구 없이 6탈삼진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틀어막았다.
타선의 화끈한 지원 속에 10-0 완승을 이끈 양창섭은 KBO리그 역대 143번째 '무사사구 완봉승'의 주인공이 됐다.
이날 양창섭은 완벽에 가까운 제구력과 경기 관리 능력을 선보였다.
(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삼성 선발투수 양창섭이 1회에 투구하고 있다. 2026.4.7 [email protected]
3회말 선두타자 장두성에게 초구 안타를 내준 것이 이날의 처음이자 마지막 출루였다.
양창섭은 주 무기인 투심 패스트볼과 날카로운 변화구의 완벽한 조화로 롯데 타자들의 타이밍을 완전히 뺏었다.
아깝게 퍼펙트게임을 놓쳤지만, 마운드 위에서 보여준 그의 묵직한 존재감은 고교 시절 '초고교급 에이스'로 불리며 푸른 유니폼을 입었던 소년의 재능이 마침내 만개했음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사실 올해 양창섭의 봄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뜰 만하면 가라앉는 부침의 연속이었다.
시즌 초반 원태인의 부상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한 그는 4월 1일 두산전에서 팀의 13-3 대승과 함께 무려 1천449일 만에 선발승을 거두며 화려하게 출발했다.
그러나 기쁨은 짧았다. 4월 15일 한화전에서는 1회초 타선이 7점을 뽑아주었음에도 2회말 제구 난조로 연속 6출루를 허용하며 1⅔이닝 만에 조기 강판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결근 5선발 경쟁에서 밀려난 그는 불펜으로 강등됐고, 구원 등판에서도 홈런을 허용하는 등 슬럼프에 빠진 끝에 4월 하순 2군행 통보를 받아야 했다.
기회 뒤에 찾아온 좌절은 더 깊고 아팠다.
그러나 양창섭은 무너지지 않았다.
(광주=연합뉴스) 조남수 기자 = 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삼성 선발투수 양창섭이 4회에 투구를 마치고 심판으로부터 이물질 여부 등 점검받고 있다. 2026.4.7 [email protected]
2군에서 칼을 갈던 그에게 다시 기회가 찾아온 것은 이달 중순이었다.
선발 등판 예정이던 왼팔 이승현의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대체 선발 임무를 맡은 양창섭은 14일 LG 트윈스전에서 강속구를 앞세워 5이닝 4피안타 2실점(1자책점)으로 호투, 승리투수가 됐다.
특히 5회 2사 만루 위기에서 LG 오스틴과 무려 13구까지 가는 숨 막히는 혈투 끝에 몸쪽 낮은 구석에 걸치는 루킹 삼진을 잡아내며 포효하던 장면은 반등의 서막이었다.
그리고 운명의 24일,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았던 최원태의 휴식으로 찾아온 또 한 번의 대체 선발 기회에서 그는 자신의 힘으로 9이닝을 지배하며 '인생 경기'를 완성했다.
대체 선발과 불펜 강등, 그리고 2군행. 누구보다 시린 봄을 보냈던 양창섭은 묵묵히 공을 던졌고, 끝내 부산 밤하늘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눈부시게 새겨 넣었다.
경기 후 양창섭은 중계방송사인 SPOTV와 인터뷰에서 "목표는 4이닝 1실점이었는데, 던지다 보니 9회까지 쭉 가서 정말 기분이 좋다"며 활짝 웃었다.
가장 고마운 사람으로 아내를 꼽은 그는 "(9회 마지막 아웃을 잡은) 김지찬 형과 앞서 김성윤 형의 나이스 캐치가 기억에 남는다"고 동료들에게도 감사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