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자(들)' 유해진 "'왕사남'처럼 물음표 역사 돌아보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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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 소재…진실 좇는 형사 철구 역
"현대사 다뤄도 역사 깊게 공부 안해…생생한 인물 연기가 과제"
'인턴'·'타짜'와 추석 극장가 경쟁…"다양한 작품에 에너지 샘솟아"
20년간 천만 영화 5편…"'왕사남' 흥행, 극장 맛 느끼게 해"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올해 1천600만명 넘게 관람한 흥행작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에서 강원 영월 산골 촌장 엄흥도(유해진 분)는 격변의 역사를 지켜본 목격자이자 당사자였다.
그는 자기 마을 사람을 배불리 먹게 하는 것 외에 대의나 정의감을 갖고 있지 않은 평범한 촌부였으나, 조선 단종의 폐위와 죽음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휘말렸다.
그런 점에서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의 형사 철구도 엄흥도와 비슷하다. 애국과 가족애, 동료애 등 당시 미덕에 충실한 소시민이었지만, 거대한 사건의 파고에 휩쓸린다.
'왕사남' 엄흥도에 이어 '암살자(들)' 철구를 연기한 배우 유해진은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한 인터뷰에서 "나라의 녹을 먹던 평범한 사람이 진실을 찾아가는 속에서 탄압과 폭력을 겪게 된다"며 "그러면서 끝까지 진실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표현했다"고 소개했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서 영부인이 저격당하는 초유의 사건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좇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다.
영화는 철구라는 축과 신문사 기자 재환(박해일)과 영일(이민호)이란 축으로 나눠 사건의 실체를 긴박감 있게 한 꺼풀씩 벗겨낸다.
상상력을 바탕으로 역사적 사건의 이면을 보여준다는 점도 유해진의 전작 '왕사남'을 떠올리게 한다.
유해진은 "'왕사남'은 역사에 남겨진 조그마한 팩트를 갖고 영화화해 온 국민이 단종의 죽음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며 "이번 작품도 늘 물음표로 남겨져 있던 당시 사건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연출은 '8월의 크리스마스'(1998)와 '봄날은 간다'(2001) 등 절제된 감정의 멜로 영화를 선보인 허진호 감독이 맡았다.
유해진은 "허 감독님 예전 작품들은 말랑말랑하고 느린 템포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영화는) 시나리오보다 더 긴박한 템포여서 놀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다뤘다는 점에서 '암살자(들)'은 6월 민주 항쟁 소재의 '1987'(2017)과 광주민주화운동을 그린 '택시운전사'(2017) 등 유해진의 전작을 떠올리게도 한다.
유해진은 "작품들이 묵직하면서 작품성도 있어서 배우로서 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며 "제 생각도 연기로 간접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다만 현대사를 다룬 작품이라고 해서 당시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도 사회적 분위기가 어땠는지 정도만 알고 작품에 임했다.
유해진은 "이번 작품도 그렇고 '1987'도 그렇고 깊게 공부를 안 하는 편이다. 시나리오에 필요한 정도만 알려고 한다"며 "너무 깊이 알면 역사적 사실을 두고 딴지를 걸게 된다. 영화는 어차피 (역사와) 다른 얘기이니 그런 생각을 안 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신 생생한 캐릭터를 만드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관객이 주변에 있을법한 인물처럼 느끼게 하는 게 그의 목표였다.
유해진은 "저는 (캐릭터가) 살아 있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두는 쪽"이라며 "영화 속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게 하는 게 제게는 늘 과제"라고 했다.
영화 속 철구는 피격 사건의 책임자로 동료가 몰리는 억울함을 목격하면서 진실을 좇는다. 책임감과 정의감을 지닌 재환·영일보다 일반 관객이 더 이입할 수 있는 인물이다.
유해진은 한편으로 정의감 있는 캐릭터를 박해일이 잘 소화했다며 칭찬했다. 그는 "꼿꼿하게 빠르게 도는 팽이의 단단함을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제가 맡았으면 우스웠을 것 같다"고 웃음 지었다.
반면 박해일은 인터뷰에서 유해진의 연기 '영업 비밀'을 알고자 그의 대본을 훔쳐봤다며, 거기에 메모가 빼곡히 적혀있었다고 했다.
유해진은 자신이 대본을 읽으며 이해되지 않고 궁금했던 부분을 적어둔 것이라며 "머리가 나빠서 뭐든 남겨야 한다"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메모로 남긴 궁금증은 유해진이 관객의 시선에서 작품을 바라본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는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관객의 시선으로 보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며 "'우리끼리 좋은 작품을 찍었다'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관객의 시선에서 시나리오를 보는 점이 유해진의 '영업 비밀'일까. 그는 '왕사남'을 비롯해 '왕의 남자'(2005), '베테랑'(2015), '택시운전사'(2017), '파묘'(2024)까지 총 5편의 천만 영화를 가진 흥행 배우가 됐다.
특히 올해는 '왕사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아 지난 5월 열린 제62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대상을 차지했다.
유해진은 "'상은 이 정도 받았으면 됐다' 싶었는데, 실제 받으니 좋았다"며 "수고했다고 저를 토닥여주는 느낌이 들었다. 2만% 만족한다"고 웃었다.
그는 '왕사남'이 극장에 활기를 불러왔다는 점에서도 기쁨을 나타냈다.
유해진은 "코로나19로 극장을 몰랐던 20∼30대에게 극장의 맛을 알게 해주고 위 세대에겐 잊었던 극장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왕사남'으로 설날에 관객을 만난 데 이어 '암살자(들)'로 다시 명절에 극장을 찾는다. '암살자(들)'은 오는 23일 개봉해 최민식·한소희 주연의 '인턴', '타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타짜: 벨제붑의 노래' 등과 추석 극장가를 두고 경쟁을 벌인다.
유해진은 "한국 영화가 홀로 명절에 개봉하면 저희끼리 '왜 이렇게 한국 영화가 없냐'고 하며 약간의 쓸쓸함과 암울함을 느낀다"며 "경쟁작이 있어야 분발하려 하고 에너지가 더 샘솟는다"고 반가워했다.
그는 "관객들 입장에서도 썰렁한 극장보다는 다양한 작품을 보고 고르는 게 더 좋으실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