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크음악계 총대장이자 스승"…음악평론가 이백천 별세(종합)
작성자 정보
- 먹튀헌병대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4 조회
- 목록
본문
PD 출신으로 1960~70년대 '통기타 군단' 이끌어…쎄시봉서 프로그램 진행
"포크 인기 비결은 사람 마음 보듬는 감성"…조영남 "한국 현대 음악의 최중추"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1960~70년대 '포크 음악의 스승'으로 불린 대중음악평론가 이백천이 21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인은 1933년 38선 이북 황해도에서 태어나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했고, 서울 중앙중학교 재학 중 밴드부에서 악기와 첫 인연을 맺었다.
그는 진해 해군 군악대에서 군 복무를 했고, 이후 '에이톤' 등 미8군 악단에서 활동했다.
1964년 TBC(동양방송) PD로 입사한 그는 60년 넘도록 통기타, 포크 음악과 함께하며 '통기타 군단'을 이끈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1960년대 포크 음악의 산실로 불리던 서울 무교동 음악감상실 '쎄시봉'과의 인연은 남달랐다.
그는 1964년 PD로 재직하던 시절, 음반을 구하고자 쎄시봉을 찾았다가 DJ 박스까지 맡게 됐고 '대학생의 밤', '데이트 위드 쁘띠 리'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쎄시봉 가수들이 부르던 고인의 애칭 '똘강'은 그의 대표적인 별명이 됐다.
그는 생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이곳에 라이브 무대가 만들어지니 조영남, 윤형주, 송창식, 이장희, 박상규 등이 하나 둘 기타를 들고 모여들기 시작했다"며 "더벅머리에 교복 입은 조영남은 직접 피아노를 치며 노래했다. 송창식은 기타를 치며 이탈리아 가곡 '까라 마마'를 불렀다. 이장희는 언젠가 '서니'라는 노래를 울면서 불렀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1969년 쎄시봉이 문을 닫자 1970년 명동 YWCA에 자리한 음악감상실 청개구리집에서 포크 가수들의 공연을 기획했다. 이곳에서는 김민기, 양희은, 서유석 등이 활동했다.
이후 1988 서울올림픽 및 대전엑스포 문화축전 전문위원, KBS 시청자위원, 한국포크싱어연합회 상임 고문 등을 지냈다.
그는 본인이 가수는 아니었지만, PD·기획자·공연 연출자 등 여러 역할을 맡아 수십 년간 우리나라 포크 음악의 최전선에서 활약했다.
2002년에는 윤형주, 송창식, 김도향, 김세환 등 포크 스타들이 참여한 옴니버스 앨범에 참여해 마지막곡 '추억 여행'을 직접 불러 발표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포크 음악에 대한 생각과 1960∼70년대 음악 관련 에피소드를 담은 책 '이백천의 음악여행'을 출간했다.
당시 출판기념회는 송창식·조영남·이장희 등 쎄시봉 출신 가수는 물론, 가수 김도향·박학기·이미배, 코미디언 전유성, 박성서 대중음악평론가 등 연예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백천은 이 자리에서 "포크가 명맥이 끊기지 않고 인기를 이어갈 수 있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때의 가수들이 이제 모두 환갑이 넘었지만, 아직도 후배 가수들에게 던져주는 의미가 많다"고 말했다.
조영남은 이날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이백천은 한국 포크계의 총 대장이자 리더였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어른인데도, 어린 가수들과 똑같이 만나서 놀아줬다"며 "우리는 물론, 후배 포크 가수들의 대장 역할도 하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현대 음악의 최중추이자 중요한 인물이셨다"며 안타까워했다.
포크음악계 한 유명 가수는 "고인은 1970년대 서울 충무로에 사무실을 두고 신인 가수들을 불러 노래를 부르게 하고 평론을 했다"며 "이백천은 칭찬도 했지만 때에 따라서는 따끔한 혹평도 아끼지 않았다. 그의 사무실은 포크 가수로 데뷔하기 위한 1차 관문이자 '사랑방, 심사장' 같았다"고 기억했다.
유족으로는 딸 이소연 전 행정안전부 국가기록원장과 사위 정준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장례식장 4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3일 오전 7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