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복수심 탐구 평생 숙제 같아…나도 끝까지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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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조 감독 '경주기행'서 죽은 막내딸 복수에 나선 엄마 연기
다시 만난 공효진·박소담 "천군만마 얻은 기분, 도움 많이 받아"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수학여행을 떠난 막내딸이 살해당해 주검으로 돌아왔다. 영안실에서 주저앉아 오열하는 남편과 달리 옥실(이정은 분)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엄마와 세 딸이 죽은 막내의 복수를 하러 떠나는 내용의 영화 '경주기행'에서 김미조 감독과 이정은은 옥실의 슬픔을 응축해 복수의 원동력으로 삼는 쪽을 택했다.
20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은 "매 장면의 감정에 대해 김미조 감독과 오랜 시간 논의하며 신뢰를 쌓았다"며 "엄마의 냉정함과 침착함이 어떤 힘을 가질 수 있는지를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엄마 옥실의 분노와 슬픔은 막내딸의 살인범을 납치해 죽인다는 복수 계획으로 발현된다.
이정은은 "잊지 않고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 투쟁하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사람을 상상하며 옥실 역에 접근했다"고 돌아봤다.
분노와 슬픔을 복수의 원동력으로 삼고 살아온 옥실의 모습은 부스스하게 기른 머리에도 담겼다. 가발이 아닌 이정은의 실제 머리다.
그는 "자기 머리를 돌볼 시간이 없고 그런 것에 신경조차 쓸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런 머리가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촬영을 마친 뒤에도 옥실은 쉽게 떠나보낼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고 한다. 특히 복수에 이르는 진한 감정을 제대로 소화했는지 여전히 자문하고 있다.
이정은은 "옥실은 끝까지 갔지만 과연 나는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며 "온전히 옥실에게 닿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고, 그래서 (촬영 후 개봉까지 걸린) 2년간 마음고생도 좀 했다"고 토로했다.
공교롭게도 이정은이 현재 주연을 맡아 촬영 중인 넷플릭스 드라마 '할매' 역시 손주의 복수에 나서는 할머니 이야기다.
그는 "사람에게 있어 복수심이란 감정이 무엇인지 탐구하게 되는 것 같다"며 "옥실 역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기보다는, (이런 탐구가) 평생 걸릴지도 모르는 제 연기의 숙제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경주기행'은 복수극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네 모녀가 여정을 함께하며 묻어뒀던 감정과 상처를 마주하는 가족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정은은 "네 모녀가 여정을 떠나면서 감춰뒀던 서로의 진심을 알게 되는 모습 등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던 것도 출연을 결심한 큰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맏이 장주(공효진)와 둘째 영주(박소담), 셋째 동주(이연) 등 세 딸을 연기한 배우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네 모녀 가운데 가장 먼저 캐스팅된 이정은은 "세 딸의 캐스팅 이후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고 모든 일이 굉장히 순조로웠다"며 "즉흥적이면서도 본능적으로 연기하는 친구들이라 제가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치켜세웠다.
특히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2019)에 이어 공효진과 다시 모녀로 만난 그는 "효진이는 든든한 오른팔 같은 배우"라며 "'동백꽃 필 무렵'에서 딸을 잘 키운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웃음 지었다.
박소담과는 영화 '기생충'(2019)에 이어 다시 만났다. 이정은은 갑상샘암으로 활동을 중단했던 박소담이 회복하는 동안 자신의 제주 집을 내주기도 했다.
이정은은 "소담이는 아프고 난 뒤 시야가 더 넓어지고, 작품에서 무엇을 얻어야 할지 깊이 고민하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며 "이 시기를 잘 넘기고 있어 대견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