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제작진 "응징 못 한 이춘재 사건, 피해자 위로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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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다뤄…"사이다 드라마가 돼선 안 된다고 다짐"
박준우 감독 "'모범택시' 현실 반영 부족 아쉬움…3부작 시리즈 목표"
(서울=연합뉴스) 장진리 기자 = "'모범택시'를 하고 아쉬움이 있었어요. '현실 문제는 전혀 해결하지 못했는데 (복수의) 판타지는 주고 허구로 사건을 이용만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을 보고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죠. 좀 더 현실을 반영한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서 '허수아비'를 기획했어요. '모범택시'에 있는 시원함은 없지만 보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박준우 감독)
27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만난 박준우 감독과 이지현 작가는 SBS '모범택시' 시즌1에서 출발해 ENA '허수아비'로 열매를 맺은 작품의 의미를 되돌아봤다.
지난 26일 종영한 '허수아비'는 실화인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배경으로, 학창 시절 원수인 형사 강태주(박해수 분)와 검사 차시영(이희준)이 연쇄살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는 내용을 그렸다.
극본을 쓴 이 작가와 연출을 맡은 박 감독은 2021년 '모범택시1'에 이어 '허수아비'를 함께 만들었다. 이 작가는 '모범택시1' 10회까지 쓴 오상호 작가의 뒤를 이어 11∼16회를 집필했다.
박 감독은 '모범택시'를 만들며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인 윤성여 씨와 고(故) 김용복 씨를 만나게 됐다. 윤씨는 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인물이고, 김씨는 연쇄살인에 희생되고도 경찰의 시신 은폐로 오랜 시간 실종으로 처리된 피해자 고 김현정 양의 아버지였다.
그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3분가량의 짧은 다큐멘터리로 엮어 '현정이야기'라는 이름으로 '모범택시' 16회 말미에 공개했다.
박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들은 윤씨와 김씨의 이야기가 '범죄 사건으로 시대를 보여주는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일깨웠다고 했다.
그는 "이 작가님을 6개월 넘게 설득해 함께했다"며 "그렇게 '허수아비'를 처음 준비하고 기획한 건 5년 전이다. 내용이 내용이다 보니 방송사 편성에서 거절도 많이 당했다"고 말했다.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제작된 것을 보고 윤성여 씨는 "좀 더 길게 하지, 20부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고 박 감독은 전했다. 김현정 양의 오빠는 차마 방송을 볼 수 없어 조금 더 마음의 준비가 되면 보겠다고 했다고 한다.
박 감독은 "제작진과 배우분들께 '드라마는 피해자 두 분 때문에 시작된 거니 방영 끝나고 꼭 찾아뵙자'고 얘기했다"고 했다.
박 감독과 이 작가가 '허수아비'를 만들며 다짐한 것은 '사이다 드라마가 돼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방송사 분들이 '제발 사이다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하셨어요. 하지만 저나 작가님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죠. 배우들도 지지를 해줬어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엔 피해자가 두 분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계세요. 이 사건이 현실에서 (속 시원한) 사이다 응징이 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고, 방송사가 그걸 충분히 받아주셨어요."(박준우 감독)
극 중 강태주는 열악한 수사 환경 속 억울한 임석만(백승환)을 용의자로 몰아가는 등 실수를 거듭한다.
강태주를 연기한 박해수도 "왜 태주가 바로 잡지 못했냐?"고 어려움을 호소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작가는 "태주를 통해 누구나 옳은 선택을 하긴 어려울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며 "그 시대의 태주처럼 더 이상 허수아비로 남지 않고, '인간으로서 내가 해야 할 선택을 해야겠다'고 할 사람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늘 악몽을 꾸고 잠을 설치던 강태주는 '허수아비' 결말에 이르러서야 곤한 잠에 빠져 꿈을 꾼다. 그 꿈속에선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연쇄살인 사건도 없고, 강태주와 사람들은 안온한 일상을 누린다. 밝은 일상엔 평범하게 사는 진범 이용우, 진실을 숨긴 검사 차시영도 함께다.
이런 결말에 대해 이 작가는 "드라마를 쓰면서 연쇄살인 사건이 없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의 일상이 소소하고 온전했을까 생각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웃을 수 있는 평범한 하루를 그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허수아비'는 시청자들의 호응 속에 2.9%에서 출발해 최고 시청률인 8.1%로 마무리됐다.
박 감독은 이 작품을 시작으로 1990∼2000년대의 대한민국을 짚어볼 수 있는 '3부작 시리즈'를 선보이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허수아비'가 범죄 사건이나 실화를 모티프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볼 수 있는 드라마가 나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엔 윤성여 선생님 같은 피해자가 많이 계세요. 저희 딴엔 노력한다고 했는데, 얼마나 그분들이 이 작품에 만족하실지는 모르겠어요. 연쇄살인마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께 위로가 될 수 있는 작품이 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