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 "'모자무싸' 박해영 대본, 한 마디가 귀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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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으로 뭉친 영화감독 박경세 역…"올해 가치있게 만들어준 작품"
"구교환은 황동만 그 자체, 강말금은 든든한 파트너"
영화 '와일드씽', MBC '오십프로' 등 다작 행보…"연기가 곧 '쉼'"
(서울=연합뉴스) 고가혜 기자 = "대본 속 한 마디, 한 단어가 너무 귀해서 읽으면서 신나고, 설레고, 또 벅찼어요. 읽자마자 '내가 하고 싶다'는 마음이 바로 들 정도였죠."
배우 오정세는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이하 모자무싸) 대본을 처음 읽었던 날의 전율을 다시 떠올렸다.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대본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100% 대본대로, 제가 느낀 좋은 정서를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잘 전달하는 연결자가 되고 싶었다"며 "이 귀한 한 자 한 자를 제 입으로 잘 구현해내겠다는 것이 1차 목표였다"고 말했다.
오정세가 연기한 박경세는 이미 영화를 다섯 편이나 개봉했지만, 20년째 감독 지망생인 황동만(구교환 분)과 자신을 늘 비교하며 시기질투와 열등감에 휩싸이는 인물이다.
오정세는 "경세의 정서는 계속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있다"며 "사실 전 누군가를 시기질투하거나, 하던 일이 잘 안됐을 때 많이 힘들어하는 편이 아니라서 경세와는 좀 많이 다른 사람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 박해영 작가와 처음 호흡을 맞춘 그는 무엇보다 작가의 대본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구현해 내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글이 가진 힘이 워낙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오정세는 "초반에는 대사 한 자라도 틀리면 안 된다는 강박이 생길 정도로 대본을 완벽히 살리고 싶었다"며 "다만 촬영하면서 점점 대본을 98%만 구현해도 이 안에서 자유로움을 더 찾아야겠다고 생각을 바꿨다"고 했다.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해 채운 '2%'의 디테일도 빛났다. 극 중 아내이자 제작사 '고박필름' 대표인 고혜진(강말금)이 황동만의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오정세는 "원래 대본에는 없었지만, 리허설 도중 경세의 속마음을 입 밖으로 내뱉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혜진이 황동만의 작품을 제작하겠다고 말하자마자 '거짓말'이라고 혼잣말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로 "모두가 다 늙어 죽길"을 꼽았다. 오정세는 "단어 자체만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성공을 위해 아웅다웅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괴로워 죽지 말라는 묵직한 메시지가 앞뒤 상황과 맞물려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어 극 중 황동만이 변은아(고윤정)를 위로하기 위해 "영구 없다"고 외치며 웃는 장면이나, 경세가 혜진에게 뿅망치를 맞는 장면 등에서는 역설적인 '슬픔'을 느꼈다며 이는 모두 박 작가의 필력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다.
"'모자무싸'를 통해 '가치'라는 단어를 다시 곱씹게 됐어요. 이 드라마는 올 한 해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죠."
오정세는 현장에서 호흡을 맞춘 동료 배우 구교환과 강말금 등에게는 거듭 '든든함'이란 표현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구교환은 매번 현장에 황동만 그 자체로 와 있었다"며 "상대 배우가 캐릭터 구축을 못 하고 헤매면 저도 불안했을 텐데, 동만이라는 캐릭터가 든든하게 구축돼 있으니 저도 마음이 편했다"고 말했다.
이어 "강말금 역시 현장에서 정말 든든한 파트너였다"며 "강말금이 옆에 있으니 저도 혹시 실수하거나 잘못 풀어나가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없이 뭔가 더 시도해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동백꽃 필 무렵'에 이어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된 차영훈 감독에 대해선 그가 자신이 연기한 인물들의 '뮤즈'였다며 웃어 보였다.
"'동백꽃 필 무렵' 종방연 때 기쁨과 벅찬 감정으로 인해 아이처럼 펑펑 우시는 모습을 보고 감독님에게서 ('동백꽃 필 무렵' 속) 노규태의 순수한 모습을 봤어요. '모자무싸'에서도 감독님이 실존하는 박경세 그 자체란 생각이 들어서 경세 캐릭터가 잘 안 풀릴 때마다 감독님께 여쭤봤죠."
스크린과 안방극장을 넘나드는 그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최근 개봉한 영화 '와일드 씽'에선 왕년의 발라드 가수 최성곤으로 변신해 관객들에게 강력한 웃음을 선사했다.
부족한 노래 실력으로 인해 촬영 때마다 무대에서 홀로 외로운 싸움을 벌였다는 그는 "촬영할 때마다 수치심이 몰려왔지만 관객들이 즐거워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다"며 "이렇게 큰 반응은 예상치 못했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지난주 첫 방송한 MBC 새 드라마 '오십프로'에서는 신하균, 허성태 등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코믹 액션 연기를 선보인다.
쉴 틈 없는 '다작 배우'라는 수식어에 대해 그는 자신만의 가치관을 밝혔다.
"쉼 없이 일한다고들 하시지만, 저는 현장에 일하러 간다기보다 놀러 간다는 느낌을 더 많이 가지려 해요. 작품 속에서 인물에 푹 빠져 숨 쉬는 그 시간 자체가 저에겐 가장 편안한 '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