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이 1년간 살아갈 수 있을까…다큐 '담요를 입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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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감독 '0원 살이' 도전기…런던부터 유럽 가로지른 여정 담아
"제 안의 두려움이 화두…인간의 선한 자질 잊지 않길"
2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 기자간담회에서 박정미 감독이 발언하고 있다. 2026.09.02. [시네마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박원희 기자 = 평범한 직장인 20대 박정미 씨는 30대를 앞두고 공허함에 빠졌다.
쉴 새 없이 일만 하던 그에게 행복이란 무엇인지 질문이 떠올랐고, 그는 직장을 그만두고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받아 영국 런던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도 천국은 아니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했지만, 일에 시달려야 하는 건 다르지 않았고 상사와의 갈등도 겪었다.
그는 결국 다시 직장을 그만뒀다. 수중에 있는 돈은 집세 두 달 치도 안 됐다. 숨만 쉬는 것만으로도 돈이 나간다는 현실에 분노한 그는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1년간 살아보는 프로젝트였다.
영화 '담요를 입은 사람'은 12년 전 박정미 씨가 도전한 '0원 살이' 프로젝트를 1인칭 카메라로 담은 다큐멘터리다. 돈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의 프로젝트는 성공할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주인공이자 작품을 연출한 박정미 감독은 2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돈이 없으면 삶도 없는 것이고 숨도 못 쉬는 것이냐는 질문과 마주했다"며 "제 존재 이유가 돈 버는 게 아닐 것이라는 점을 목숨 걸고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고 프로젝트 계기를 설명했다.
영화는 카메라 앞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고 공언하는 박 감독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무력한 것보다 무모한 것이 낫다'며 도전에 나선 박 감독은 대안 주거 활동가의 도움을 받는 것을 시작으로 자급자족 방식을 배워간다.
쉽지 않던 '스킵 다이빙'(버려진 음식을 주워 생계를 이어가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빈 건축물을 점거해 살아가는 '스쿼팅'(Squatting)도 해본다. 자연 속에서 전기 없이 직접 나무를 자르고 채소와 가축을 기르는 경험도 한다.
영화는 그렇게 대안적인 삶을 살아가는 공동체를 조명한다. 버려지는 음식과 빈 곳이 넘쳐나지만, 노숙자가 여전히 있는 도시 생태계의 모순도 자연스럽게 꼬집는다.
박 감독은 "돈이 없어도 노동으로 물물 교환을 해서 먹여주고 재워주고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집을 찾기 위해 공동체에 가게 됐지, 환경에 대한 의식이 있던 건 아니었다"며 "'왜 이렇게 굳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인가'란 질문도 생겨서 그 사람들과 논쟁과 토론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공동체를 찾아다니면서 박 감독의 여정은 런던에서 웨일스, 슬로바키아 등 유럽을 가로지른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삶을 꾸려가는 공동체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내고 재미를 선사한다.
동시에 박 감독의 여정은 자기 내면으로도 향한다. 여러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도, 그는 불편함과 외로움을 느끼며 자신에게 편안한 장소가 무엇인지 자문한다. '0원 살이' 프로젝트는 그렇게 박 감독에게 자신이란 존재와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며 보편적인 공감을 자아낸다.
박 감독은 이 여정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두려움을 꼽으며, 이것을 깨닫고 나서야 기록용으로 시작된 영상들이 영화로 구성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도전을 담은 에세이 '0원으로 사는 삶'을 2022년 출간하고 4년이 지난 뒤에야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는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니, 저는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쳤고 그 이유는 두려움이었다"며"돈이 있다면 안전한 집에 있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돈도 제 두려움을 덮는 장치 중 하나였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두려움이라는 실로 (영화를) 이어갈 수 있게 되자, 어린 시절부터의 저라는 사람이 이해됐다"며 "관객들도 (영화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이 프로젝트는 박 감독이 두려움 없이 사는 삶에 한 발 더 다가가도록 했다. 대안적 공동체를 비롯해 여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따뜻함은 그를 변화시켰고 이는 지금 그의 삶에도 남았다. 그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뒤 전남 진도, 구례 등지에 살며 소비 없는 삶을 이어가기도 했다.
박 감독은 "공동체가 지향한 의식들이 씨앗이 발아하듯, 천천히 제 삶에 들어왔다"며 "길에서 스쳐 간 사람이 건넨 물이나 음료수조차도 제 삶을 변화시켰다. 매일 만난 사람들 모두가 저한텐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두려움을 걷어내는 또 다른 작업으로서 박 감독은 최근 죽음이라는 화두를 갖고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그는 파킨슨병을 앓는 아버지의 모습 등을 촬영해 어떻게 존엄하게 돌봄을 받고 죽을 수 있을지 고민을 풀어볼 예정이다.
박 감독은 "('담요를 입은 사람' 이후) 다시는 영화를 안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를 찍기 시작했다"며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천천히 남겨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는 9일 개봉하는 '담요를 입은 사람'이 인간의 선함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랐다.
박 감독은 "세상이 불안하고 위험하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은데, 함께 살면 두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며 "요즘 악(惡)의 모습만 노출돼서 인간의 선한 자질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은데, 이런 이야기가 더 나왔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